은평구립도서관 사서 박치훈

이 지면에 글을 쓰게 된 것도 이번이 여섯 번째가 된다. 고작 A4용지 한 장 정도 분량을 쓰면서도 매번 힘이 든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간다는 느낌이다. 힘들게 다 쓰고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뭐가 미진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미진하다. 어떤 글이 잘된 글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일 것이다. 퇴고를 하려고 해도 뭐가 좋은 글인지 알아야 퇴고를 할 것이 아닌가. 글쓰기가 수학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잘된 글 좋은 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이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저자의 강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때의 내 상황은 마감시간이 다가와 글쓰기가 고역스러울 때였고, 어떻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지도 알고 싶었던 터였기 때문에, 8년 동안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다는 저자의 강연은 나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글쓰기의 팁들도 유익했지만, 두 대통령의 글을 쓰면서 힘들었던 경험담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며칠 후 서점으로 가서 이 책을 사들고 왔다. 나는 원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 이 책은 금방 읽혀졌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가는 이 책에 나오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일부 드러난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8년간의 청와대 생활은 나에게 과민성대장증후군이란 달갑지 않은 선물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2002년 국장 진급 임명장 받는 날이었다. 청와대 행사라는 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문제가 된다. 지각을 하거나 예행연습에 불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과천에서 경복궁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나는 그날도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 긴장해서인지 화장실이 급해 신용산역에서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빈칸이 없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도저히 안 돼 칸칸마다 두드리며 호소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심했다. 대통령 임명장을 받는 날, 사고가 나선 절대 안 됐다. 바지를 내리고 급한 대로 소변기에 앉았다.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들이 뭔지 모르지만 귀신에 홀린 듯 순간적으로 엄청난 혼돈을 느끼며, 못 들어올 데 들어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나갔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남자 소변기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재미있는 글이 아닌가. 또 다시 읽어봐도 나로선 흠잡을 곳을 찾을 수 없다. 나도 저자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자의‘솔직함’을 배우고 싶었다. 자기의 굴욕적인 사건을 책에 쓸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어떤 책들은 은근히 자기자랑만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런 책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읽다가 덮어버린다. 솔직한 글이 감동과 재미를 준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잘난 점도 있지만 못난 점도 분명히 있다. 좋은 글을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과 굴욕까지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