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립도서관 사서 박치훈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한다고 말하면 “책 많이 읽겠네요” 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사서들이 들으면 조금 속상한 말이다. 겉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은 각종 민원처리와 행사진행, 서류작업 등등으로 의외로 바쁘고 피곤한 직업이다. 업무시간에 한가롭게 책을 읽을 여유 따위는 없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니까 도서관 사서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벤츠 마니아라면 돈을 많이 벌어서 벤츠를 구입해서 멋지게 드라이빙을 해야지 벤츠 공장에 취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벤츠 바퀴만 조립하는 벤츠 공장 노동자는 오히려 벤츠를 싫어할 지도 모른다.

업무로서 책을 다루는 사서는 책을 보더라도 표지, 표제지, 책의 물리적 형태 등등만 주로 본다. 알맹이는 못 먹고 껍데기만 핥는다고나 할까. 그러나 업무상 책표지를 수없이 보더라도 한 가지 얻는 점은 있다. 책의 표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현 시대에 유행하는 생각의 흐름을 대략이나마 알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피곤한 사서의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일 것이다. 가끔씩 마음에 들거나, 특이한 제목의 책이 보이면 나중에 보려고 사진을 찍어 두기도 한다.

요즈음 내눈에 띄는 제목의 책들은 <약간의 거리를 둔다>,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같은 류다. 공통점이 보이는가.

과거의 자기계발서들은 ‘성취해라’, ‘노력해라’, ‘승리해라’, ‘버텨라’ 등등의 메시지를 담았다면 요즘은 ‘떠나라’, ‘버려라’(미니멀리즘), ‘모두에게 이해받으려 애쓰지 마라’ 등등의 메시지를 던지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더하고 보태고 안간힘 쓰는 것 보다는 조금 빼고, 버리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나 자신에 좀 더 집중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는 것이다. 요즘 시대가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일에 지치고 그 일 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은 더 지치는 시대다. 경쟁 속에서 이기려고 아귀다툼하는 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 못살더라도 인생을 음미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 보자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랄까.

이 책 <약간의 거리를 둔다>도 그런 흐름 안에 있는 베스트 셀러이다.

여기 이 책의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인간관계에 관한 팁(tip)이다. 너무 가까워지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불편하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책은 어렵고 두꺼운 책이 아니다. 쉽고 작은 크기의 책이다.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노작가의 짤막한 인생 팁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름은 책읽기가 어려운 계절이다. 두껍고 어려운 책 보다는 휴가지에 가져가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권한다.